2012-02-09

공정사회에의 열망, 혹은 열등감

보지는 않았지만 '부러진 화살' 이나 '범죄와의 전쟁' 이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흥행을 하는 요소에 대하여 모 교수께서 "대중의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하셨다. 여기는 가정이 깔려 있는데, 1) 현재의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것과, 2) 대중은 공정사회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글쎄, 이 가정에 동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 현재의 사회가 공정하지 않을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평등과 공정을 구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떡은 늘 작아보이기 마련인데, 말 타면 경마잡히고 싶다고 욕심이 한이 없는 것이 인간인지라 늘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나도 그러니까.

게다가 공정하지 않은 케이스를 경험하고 나면 '아, 정말로 이 사회는 공정하지 않구나' 하고 못을 박아 버리곤 공정한 케이스를 봐도 별다른 감흥이 안 생긴다. 왜냐하면 공정한 케이스는 내게 보통 불리한 경우가 많고 공정하지 않은 케이스는 '공정할' 경우 내게 유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랄까... 결국 세상이 불공정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끼는 순간부터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게 사회적 지지 (Social support)를 받는 순간 폭발적인 상황이 된다.

판사에게 석궁을 들고 간 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의견이 나뉠 거다. 이게 죄다 아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미 불공정한 상황이라 말하고 싶은 거다. 내 앞에 석궁을 든 사람이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하고, 자료를 갖춰 와서 논리적으로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하고, 막무가내로 욕하면서 넌 왜 그러냐,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원천적으로 인간의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그걸 공정하게 만들려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2. 나도 잘 모르겠는데, 누가 공정사회에 대한 정의를 내려줬으면 좋겠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글이 이 물음에 대답을 해 줄까? 개인의 정의가 모여 사회의 정의가 된다는 다분히 민주주의적인 발상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공정사회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다고 본다.

재벌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함께 일하면서 압력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니 모른다고 한다. 별의별 방법이 다 있다고 하는데... 과연 이걸 겪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다른 사람들은 매체를 통해서 이런 일이 있다, 그래서 재벌이 잘못되었다고 정보를 얻는다. 옳은지 아닌지 검증할 시간도 능력도 없이 그냥 일방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오죽하면 이러겠습니까" 식의 하소연은 자신의 권위를 증진시킬 지언정 공정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것과는 별도의 일이 아닐까? 현대 사회는 개인 미디어 시대인지라 개인의 의견이 아무런 여과 없이 전체에게로 퍼져나간다. 그럼 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공정사회에 포함되지 않는가? 내가 이익을 얻은 만큼 피해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 내용은 개인이든 미디어든 국가든 누구든 같이 적용되는 것이 진짜 공정사회다. 하지만 개인은 그걸 감당할 힘도, 능력도 없고 고작 외치는 것이 언론 자유이다. 

본인이 언론인지, 공정사회가 과연 "나만의" 공정인지, 타산지석의 교훈은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토론이 능사는 아니요, 잡다한 이론의 나열은 더욱 판단하기 어렵게 할 뿐이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고 더 큰 이익을 노리는 것을 감추어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은데, 이 참을성 없는 시대는 그런 일들을 놔두질 않는다. 한 순간에 나쁜 사람 또는 공정치 못한 집단의 소속원이 되어 버리는데 세월이 지나도 회복이 되질 않는다. 익명성과 자유 뒤에 있는 사람의 하나로서, 내가 이 상황이 될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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