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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곳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결국 논문은 영어로 써야 한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떠들어봐도 정말 부끄러운 옛 논문들은 내 엉터리같았던 경험의 기억들을 되살린다. 아마도 평생 공부해도 모자랄 학문의 세계란 실로 깊고 넓음을 실감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러한 비판은 스스로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상업적으로 이득을 얻었는가 아닌가 하는 관점을 떠나서, 서로 다른 언어로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랄까. 하물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국어로 읽으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인데, 번역의 경우는 뭐 말할 필요도 없을 수준이 아닐까 싶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가 전 세계에 출판되고 읽혀지고 있는 가운데 번역이 잘못되었느니 나는 잘못 없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있는 모양이다. 일단은 완벽한 번역이 되어야 하는 것은 번역서를 내는 출판사의 입장에서 매우 당연한 독자의 요구라 아니할 수 없는데, 특이 이와 같은 학술 번역서가 아닌 소설 또는 전기와 같은 경우는 더욱 실수를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는 한다. 독자가 저자의 생각을 곡해할 정도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참 잘못된 것이며, 이를 판매하는 행위는 가히 '팔아먹는' 행위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왜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읽고 싶어하는가? 그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을 그렇게 채우고 싶은 것일 것이다. 번역판의 오류가 있다고 하면 영문판을 사서 읽으면 되고, 실력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그렇겠거니 하고 넘기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면, 이런 논란은 가히 평민의 사고 한계를 초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어떻게 했을까. 번역자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거나 전문가에게 검토를 맡겨 해결했을까? 내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번역 시장의 관행 또는 오류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금 비약이 아닌가 싶다. 나도 지금 Elements of Information Theory라고 하는 책을 심도있는 이해를 위해 조금씩 번역하고 있지만 이걸 판매할 생각으로 하는 것은 아님에도 매번 다음 장으로 갈 때마다 내가 일관된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가 검토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지적은 번역자나 출판사에 해야지 좋은 의견이 되는 거지, 충격을 줘서 출판업계의 번역 관행을 고치겠다는 원대한 목적으로 하면 생각했던 효과를 아주 작은 부분밖에 거둘 수 없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든다. 번역이 정신 노동인 것은 맞다.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실 최근에는 더욱 많아진 느낌인데, 꼭 평가를 하는 사람은 없고 받는 사람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잘 하면서 왜 메이저로 인정받지 못하느냐 하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가수만큼 노래 잘 하지 못하면 가수 비판하지 못하느냐, 자동차 회사 못 세우면 자동차 품질에 대해 비판하지 못하느냐 하는 의견이 있다. 가수만큼 노래 잘 한다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 가수에 대해 비판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자동차 회사는 아니어도 자동차에 대해 이해하는 수준이 정비사 수준이 되지 못하고는 품질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된 정보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번역가에게 '오류가 이렇게 있네요' 하고 지적하는 것과 '이건 엉터리여' 하고 만방에 떠들어대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가수 노래 못한다고 방송 게시판을 온통 도배하고, 차 결함 안 고쳐준다고 회사 찾아가서 앙탈부리는 것과 동일한 거 아닐까?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큰 관점에서 보면 돈이라는 더 큰 목적을 충족하지 못한 나와 같은 도가 부족한 인간들의 관점이지, 과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번역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싶다. 아직도 이해가 좀 부족한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나네. 한편으로는 내 부족한 영어 실력을 향상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무척 많이 하게 했던 대학 시절 도시 생태학 영어 강의가 생각난다. 누군가 번역일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늘 돌아봐야 하는 것이 무척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않은 것 같다고 해서 비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원저의 저자가 생각한 것이 과연 얼마나 원저에 반영되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문학서와 기술서가 다른 경우가 되겠지만, 번역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시간이 지나고 교정이 계속되면서 원저자와 번역자의 계속적인 개입이 좋은 책을 만들게 되는 것인데, 이렇게 일회성으로 끝날 책 가지고 틀렸네 부정이네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참 덕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2011. 11. 4 추가
아마도 번역가 사이에서도 논쟁이 있는 모양이다. 먼저 비판 비슷한 비난을 했었던 사람과 배치되는 의견이다. 둘이서 웹에서 왈가왈부하고 있는 모양인데, 난 내 자신도 그렇고 이런 식의 논쟁은 생산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666690
안다고 스스로 확신하는건 얼마나 많은 주관적인 오류를 범하는것인지..새삼 인터넷의 다양한 활용성때문에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것같네요. 안다고 느끼는것으로 좀 더 겸손해야할 시기기에 '선택' 또한 어렵게 느껴지는데^^ 영화를 봐도 정해진 자막수 때문에 '10만달러'를 '많은돈'이라고 표현했던 예전 어떤영화가 생각나네요.
ReplyDelete세상이 넓어지고 빨라지니 이런 일들도 생기는 듯도 합니다. 그저 좀 편안하게, 즐겁게 살 방법이 없을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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