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9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보자.

작금의 상황에 대해 의견도 분분하고 해결책 제시도 다양하다. 많은 언론들께서 거르지도 않고 중계하는 바람에 그냥 그저그런 의견 따위가 되어버리지만, 중요한 점은 누가 먼저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두가지 의견인데, 하나는 강자가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태 믿음직하지 않았는데 어찌 믿느냐는 것이다.

둘다 맞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목적과 수단을 잘 섞어서 작금의 상황에 맞게 풀어가게 하면 될일이다. 진영이 어쩌고 잘했네 못했네 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단, 우리의 학습적 기억을 되짚어보면 방심했을 때 당했다는 것은 진리이자 역사이니 이에 대한 방비는 뚜렷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으며, 그러기에는 우리가 너무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편 가르고 싸우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치중될 수 있는 의견을 균형잡게 해 준다는 점에서 좋은 방책이다. 하지만 이것이 소위 중우 (어리석은 대중)와 뒤섞이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중우이냐 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말고 어차피 중우의 하나인 우리와 우리 주변의 상황이 힘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음을 잊으면 안될 것 같다. 그래야만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무언가 얻을 수 있지, 그저 믿음으로 정으로 생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데 괜히 발목을 잡는다, 절차를 따진다 하는 논리는 아닌 것 같다. 누구는 어떻게든 필요하니까 따라간 것이지, 발목 잡자고 간건 아닐 테니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때다. 누구 말마따나 "절실함"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 "절실함"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주관적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객관적인 절실함 따위는 정의될 수 없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절실함 따위의 기준으로 바라보지 말고 냉철하기 우리가 여기서,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앞뒤좌우 과거 미래를 살펴보면서 결정해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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