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1

사람이 중요하다. 그런데 판단이 어렵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은 요즘,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차라리 부담이 없었던 예전 용감함이 그립고, 무언가 계획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을 맡았다면 어찌 되었든 해 내야 하는 법, 자신의 직무에 대한 처절한 분석과 그 달성을 위한 각종 자원과 노력의 배분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이것이 최적으로 간다면 최적의 결과를 내겠지만, 아쉽게도 세상에는 이러한 상황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그저 내가 가진 자산을 기준으로 차선의 결과를 내면서 최선을 지향하는 것뿐.

이게 능력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그저 상상하고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동료로 만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뭔가 설득해서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일을 하면서 무언가 함께 이루어갈 수 있다면 이보다 보람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이렇게 추구하면서 하루하루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보다 더 큰 일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충돌도 불가피하다는 것. 너의 일과 나의 일이 지향점이 같다면 다행이지만, 이익이 같다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런 일들을 살펴보면 각자가 이익을 위한 방법이 달라서 충돌하게 되고 결국 일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것을 목격한다.

또한 서로 다른데도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가족이라고, 가까운 사이라고 늘 같은 생각과 지향점을 가질 수는 없는 법, 이런 경우에는 그저 인정해주고 잘못 간다고 생각하더라도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고 나서 잘못된 점을 냉정하게 깨달으면 좋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이 또 이런 경우가 가지는 한계점이다. 원인과 결과가 다 나쁘더라도 인정해주고 다시 시작하게 돕는 것이 그저 할 수 있는 일일 게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람으로 귀결된다. 내가 일하고 믿고 따르는 모든 것이 결국 내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바, 한 사람이 가진 관점들이 모여 조직과 사회를 이루고 큰 물결을 이룬다고 할 때 사람이 중요하다. 그런데 판단이 어렵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일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고, 저렇게 사는 사람은 그런 일들을 좋게 판단하기 어렵다. 상상력과 창의력도 유분수고 그저 앞에 있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참 어렵다. 사람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중요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게 참 어렵다^^

2021-11-24

누구는 자격이 있나.

뭔가 알면서 행동하지 않는 것도 잘못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알고 나서도 그대로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뭔가 알고 있다고 느꼈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원래 생각했던 게 맞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반복되거나 연쇄되는 과정을 시간이라는 축과 함께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다는 거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그러고 나면 뭔가 바르게, 또는 나쁘게 할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게 세상인 듯 하다.

일말의 위로를 받으려고, 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또 다시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다 뒤돌아보면 또 생각이 나고 어렵고 한 것 또한 당연한 일일까. 과연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우면서 나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 자리를 맴돌면서 짧으면서도 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어렵다. 그런데 해답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생각만 많아진다. 그저 현재의 삶에 충실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또 잠시 지나면 어려워진다. 

2021-10-28

딱하다. 내가 나이를 먹었나.

 들려오는 소식들에 반가운 건 별로 없고 그저 일이고 힘들고 마음아픈 것들이다. 이럴 때마다 내가 이제 나이를 먹었나 싶어진다. 

2020-06-26

말 그대로 담대해지려면

무언가 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할때, 무언가 잘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열심히 목표를 향하 가는 것과 잘 가는 것이 다르듯, 노력을 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것도 참 많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잘 하는 것으로 봐 주시오' 하는 이야기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언급이다. 내가 사회 초년병때 들었던 이야기 중에 '열심히 하지마, 목표를 정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다'던 언급이 생각나는데, 야생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듯 생활하던 나에게는 참 충격적이면서도 와닫는 말씀이었다.

무언가 '담대하게 나서'려면 먼저 이 담대함의 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시작이 반이라고 첫발을 내디디고 나면 이제 후회할 기회도 없을지 모른다. 이런 일들을 몇번 겪고 나면 아무리 무딘 사람이라도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고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저 사람과 내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걸 담대함으로, 과감함으로 포장한들 그건 내 시각일 뿐이다. 저 사람이 담대해질 수 있는 조건을 우선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 내가 가진 능력이 한계가 있으니 내가 아무리 저 사람을 위해 준비한다 하더라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내 능력을 올리든, 조건에 맞는 환경을 만들 사람을 끌어들이든 방법은 있으나, 근본적으로 현실의 벽은 이런 일들을 거의 용인하지 않는 편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에서 이런 시도는 꿈으로 남고, 나중에라도 해보자 하고 웃으며 헤어지지만 마음 속에서는 이미 틀린 것임을 서로 알고 있다. 답답하지만, 이게 세상 이치 아닐까?

2020-06-11

AppleID 보안질문 관련 곤욕을 치른 이야기 - 이중인증으로 극복

Airpods pro를 선물받고 사용하다 보니 펌웨어 업데이트 등 여러가지로 여전히 폐쇄적인 Apple의 행태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 한가지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또한 마케팅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안드로이드 기반 휴대전화에 페어링해서 잘 들리는 걸 위로로 삼을 정도였으니.

결국 전략에 넘어간 건가, 기존 휴대폰의 보조금이 끝나면서 iPhone SE 2020으로 교체하게 되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iPhone 4S의 감성이 충분히 살아있는 데다가, 요금제에 부가된 음악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어 더이상 저장공간도 많이 필요 없었던 바, 즐거운 마음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런, 여기서 벽을 만날 줄이야... 십몇년 전에 사용하던 AppleID가 다시 사용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iTunes를 꼭 사용할 필요가 없는 점은 다소 편리해졌지만, 결국 password를 리셋하고 나서야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서 다음 벽을 만나게 된다. AppleID 관리를 위한 페이지에 접속하려는데 보안질문이 던져진다. 일본에서 만들었던 터라 일본어로 질문이 나오고, 분명 내가 답할 법한 내용으로 넣었는데 틀렸단다. 이렇게 몇번 잘못 넣고 나면 아예 입력을 할 수 없고 기다리라고 나오고, 보안질문을 재설정하려고 해도 충분한 정보가 없다나, 할 수가 없단다.

이것저것 알아보고 검색하고 콜센터에 전화해볼까 하다가 AS에도 물어보니 답이 없단다. 그런데 일말의 빛, 이중인증을 이용하는 방법이 보인다. AppleID 접속을 내 기기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한데, 이번에 구입한 iPhone을 통해 이중인증을 마쳤다.

다시 AppleID 관리 페이지에 접속하니 문제없이 접속된다. 자, 보안질문을 리셋해볼까... 찾는데 그 항목이 없다. 이것도 찾는데 며칠 걸렸는데, Apple 보안정책에 아래와 같이 써 있다.

- 이중인증을 이용하게 되면 보안질문은 따로 필요 없어지고,
- 만일 사용자가 이중인증을 취소하고 이전의 보안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2주간 보안질문 내용이 저장되었다가 이후에는 삭제된다는 것.

아무튼 문제는 다 해결한 셈인데, 2주가 지나가고 이중인증을 취소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보안질문을 다시 세팅할 수 있을지? 테스트는 해보고 싶지 않다.

2018-12-11

쉬운 일, 어려운 일, 곤란한 일

글을 쓰고 싶을 때마다 왠지 망설이게 된다. 내가 이 글을 쓰는게 맞는 건지, 욱하는 마음에 그냥 쓰다가 누군가 보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지 하는 거다. 이 블로그가 내 공간이긴 하지만 넘겨보는 것은 자유이기에, 그리고 누군가는 내가 쓴 글과 나를 연결해볼 것이기에.

하지만 참으로 참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현상의 본질을 치부해버리는 일, 가치를 추구하기 이전에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함을 간과하는 일, 그리고 합리적인 일을 배재하는 것과 합리를 가장한 불의를 보는 일 등이다. 자신이 '무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닌 것'은 결코 알아낼 방법이 없으며, 이것은 내가 아닌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알려줘야만 하는 것임을,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없이는 결코 발전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지만... 나 역시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서 정리하기 어렵다.

또한 이 블로그라는 것이 특정한 hierarchy를 정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것들이 무언가 정리되어 있는 느낌은 아니기에, 나중에 수정하려고 해도 찾아보는게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 망설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8-12-07

AWS Step Functions - 꿈과 코드의 결합?

즐거운 이야기가 나왔다. 여태 하던 걸 다 통합해버릴 수도 있을, 지금까지 내가 하던 것들을 익숙하게 할 수 있을 만한 것.

Blog - AWS Step Functions

2018-12-06

Cloud 관련 : AWS Essential (T아카데미)

이것저것 살펴보던 차에 Cloud Computing 관련 좋은 강의가 있어서 링크를 걸어본다.



2018-09-29

드디어 github에 공간을 만들다.

https://github.com/SoungwoongYoon/AutoKeras

이제는 뭐 어쩌고 보내고 하는게 귀찮다. 나도 내 자신을 참조할 어딘가가 필요해진 탓이겠지.

일단은 AutoKeras 코드를 시작으로 이것저것 해볼 생각이다.

아이센스 무선 프리젠터 마우스 LP800 간단 리뷰



그동안 발표를 빙자하여 다양한 무선마우스들을 써 왔다. 배터리 문제나 작동이 잘 안되는 등 자잘한 많은 문제점들을 느끼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 구입한 LP800은 어떨지 궁금하다.

- USB Connector를 통해 안정적으로 연결된다. 여지껏 블루투스 무선마우스를 써 왔는데 일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냥 잘 연결되기만 바란다. 마우스 본체에 connector 수납공간이 있어서 잃어버릴 염려는 없는 것 같다.

- 휴대성을 최우선에 두고 구입한 만큼 납작한 디자인은 매우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게 워낙 납작하니까 또 너무 낮아서 손에 잘 안맞는 느낌. 아마도 적응을 해야 할 듯. 무지 낮아서 평소에는 못쓰고 발표때나 써야 할듯 (손등이 아픔)

- 휠이 좀 작아서 불편하다. 마우스 모드에서 생각하는 만큼 휠 스크롤이 빠르지 않다. 이거야 설정에서 극복하면 될 일이다. 프리젠테이션 모드에서는 뒤로 돌리기를 휠 업을 해서 해야 하는데, 좀 익숙해질 필요는 있는 것 같다.

- 에어마우스 기능을 생각하면서 구입한건데 이건 LP800A에만 들어있다네. 가격은 두배 정도로 뛴다. 물론 자세히 살피지 않는 내 문제이긴 하지만... 뭐 잘 사용하면 되겠지.

- USB 포트로 충전하는 것은 참 좋은데, 전용 케이블을 써야 한다. 8pin 등 좀더 노멀한 인터페이스를 이용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 클릭시 작동감이나 기계음 등이 좀 그렇다. 무소음 마우스를 생각하면 안되겠지만 좀더 딸깍 소리를 적게 나게 설계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생각한 것보다 2% 부족하지만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용서가 된다. 이제 발표장에서 거리, 작동감 등을 테스트해 볼 일만 남았다.

2018-09-19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보자.

작금의 상황에 대해 의견도 분분하고 해결책 제시도 다양하다. 많은 언론들께서 거르지도 않고 중계하는 바람에 그냥 그저그런 의견 따위가 되어버리지만, 중요한 점은 누가 먼저 행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두가지 의견인데, 하나는 강자가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태 믿음직하지 않았는데 어찌 믿느냐는 것이다.

둘다 맞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목적과 수단을 잘 섞어서 작금의 상황에 맞게 풀어가게 하면 될일이다. 진영이 어쩌고 잘했네 못했네 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다. 단, 우리의 학습적 기억을 되짚어보면 방심했을 때 당했다는 것은 진리이자 역사이니 이에 대한 방비는 뚜렷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으며, 그러기에는 우리가 너무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편 가르고 싸우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치중될 수 있는 의견을 균형잡게 해 준다는 점에서 좋은 방책이다. 하지만 이것이 소위 중우 (어리석은 대중)와 뒤섞이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중우이냐 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말고 어차피 중우의 하나인 우리와 우리 주변의 상황이 힘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음을 잊으면 안될 것 같다. 그래야만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무언가 얻을 수 있지, 그저 믿음으로 정으로 생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데 괜히 발목을 잡는다, 절차를 따진다 하는 논리는 아닌 것 같다. 누구는 어떻게든 필요하니까 따라간 것이지, 발목 잡자고 간건 아닐 테니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때다. 누구 말마따나 "절실함"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 "절실함"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주관적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객관적인 절실함 따위는 정의될 수 없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절실함 따위의 기준으로 바라보지 말고 냉철하기 우리가 여기서,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앞뒤좌우 과거 미래를 살펴보면서 결정해야 하지 않을지.